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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효과, 49640 시간의 날개짓

김연아는 앞으로 오랫동안 피겨 스케이팅을 지배할 것이다.
- 2010년 동계올림픽 직후, 카타리나 비트

 

김연아는 한국의 여왕에서 세계 모두의 여왕이 됐다.

- 2010, 뉴스위크紙

 

녀의 피겨 스케이팅 경기는 사상 최고로 기억 될 것이다.

- 2010, AP통신

 

한국에서 온 살아 숨 쉬는 예술품, 다른 선수들과는 리그가 다르다.

- 2010, 밴쿠버 선(Sun)紙

 

연아는 범접할 수 없는 프리마돈나.
- 2010, 日 아사히 신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닌 후배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대표 김연아로 봐주세요. 소치 올림픽에서 현역은퇴를 하겠습니다.”

 

1. 피겨에 반한 김연아, 49640 시간을 날다.

 

김연아는 7살 때부터 스케이트를 신었다. 오전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쉬지 않고 피겨 선수가 되어있었다. 새벽 6시 30분부터 시작한 하루는 몸풀기로 시작해 8시간씩 연습을 했다. 빙상장이 열지 않는 일요일을 빼고 매일을 빙상장에서 보냈다. 집에 와서는 다른 선수들의 피겨 영상이 담긴 비디오를 끊임없이 돌려보며 자세를 따라 했다.

김연아가 피겨를 시작한 그 당시 ‘피겨 스케이팅’은 우리나라와는 전혀 무관한 스포츠였고 아는 사람도, 후원해주는 사람도, 심지어 피겨 선수도 1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스케이트도 자주 망가져 김연아는 짝짝이 스케이트를 신고 경기에 나가야 했다. 전용 피겨 링크장 하나 없는 열악한 한국 피겨스케이팅 환경에서 점점 연습에 집중하기 힘들었고 계속되는 부상과 금전적인 어려움으로 매일이 포기하고 싶었다.

김연아는 2003년 첫 주니어 데뷔를 시작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언니를 따라 시작한 피겨가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희망이 되었다.

2. 세계 신기록 ‘228.56점’, 내가 뛰면 전설이 된다.

김연아는 시니어 데뷔 이래 세계 메이저 대회 3개(그랑프리·4대륙·세계선수권)를 모두 석권했다. 지금까지 출전한 대회에서 포디움을 놓치지 않았고 여자 싱글 최초의 그랜드슬래머 (그랑프리 파이널 / 사대륙 선수권 / 세계 선수권 / 동계 올림픽 우승)가 되었다. 세계신기록은 김연아로 인해 SP 5번, FS 3번, 총점 3번 11번이나 갱신 되었고 전설의 기록이 되었다.

1908년에 스케이팅이 국내에 도입된 이래 피겨 종목에서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 한 것은 성인대회와 주니어대회를 통틀어 김연아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피겨 불모지로 여겨졌던 한국에서 김연아의 등장은 피겨계의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대한빙상연맹 선수등록 자료를 보면 2007년 일본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머쥔 뒤, 그 이후부터 해를 거듭할수록 피겨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대한빙상연맹에 따르면 2006년 기준 2007년 14%, 2008년 18%, 2009년 46%까지 피겨선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3. 돈만 버는 김연아? 이래봐도 제대로 잘 쓰는 여자

한국에는 피겨 전용 빙상장이 없다. 뿐만 아니라 피겨 선수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이어서 충분한 연습을 하지 못했고, 결국 김연아는 안무비, 의상비를 포함한 연간 4  ~5억 원의 자비를 들여 해외로 전지훈련을 가야 했다. 김연아는 이 막대한 훈련비를 마련하기 위해 광고를 찍을 수 밖에 없었다.

김연아의 수익의 대부분은 스폰서의 현물 지원 일부와 CF 촬영, 아이스쇼 출연, 각종 행사 참가비였고, ‘희망의 아이콘’으로 사람들과 기업을 이어주는 신뢰감 있는 모델이 되었다. 한국방송광고공사 자료에 따르면 김연아 광고의 경우 평균 CPCM이 645.875으로 전 업종 평균 1천408원보다 훨씬 낮았고 광고효과 상위 10위 브랜드 중 3개 브랜드가 바로 ‘김연아 광고’였다.

  • 2010년 970만 달러(약 114억)
  • 2011년 1000만 달러(약 105억 1500만원)
  • 2012년 900만 달러 (약 102억)
  • 2013년 1400만 달러(약 156억 1700만달러) <김연아 연간 수입, 포브스>

하지만 김연아는 성공이 혼자 이뤄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김연아 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하고 있는 후배들을 생각했다. 각종 아이스쇼, 행사, 우승 상금을 기부했고 적지만 매년 5억이상, 공식적으로는 2011년까지 25억 정도, 비공식적으로는 30억 정도를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었다.

4. 내가 만들어낸 작지만 큰 변화들


김연아의 노력들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2010 벤쿠버 동계 올림픽 우승에 따른 경제적 가치가 5조 2천억 원, 이 중 국가 이미지 홍보효과가 9천억 원에 이를 만큼 한국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도 많아졌다.

선수로서 은퇴 전, 한국의 동계 스포츠 발전을 위한 큰 기회인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김연아는 선수로서 경험했던 이야기와 이뤘던 성공을 많은 한국 선수들이 느낄 수 있도록 세계인들을 설득했다. 김연아는 비록 열악한 환경에서 연습할 수 밖에 없었지만 자신보다 더 훌륭한 선수들이 더 좋은 환경과 기회 속에서 연습할 수 있길 바랬다.

3차례의 도전 끝에 한국은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통해 투자 경제적 효과 16조 4000억원, 소비 지출 4조 7000억 원, 관광효과 32조 2000억원 등 약 64조 9000억원의 경제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나가노 올림픽을 보며 미셸 콴 선수를 롤모델로 삼았던 꼬마는 이제 모든 피겨 선수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이제 이 경기가 끝나면 김연아는 빙상 장에서 내려오게 될 것이다. 피겨 국가대표 선수인생은 막을 내릴 테지만, 항상 온 국민들 마음속에 김연아는 영원히 피겨 퀸으로 남을 것이다. 마지막 경기가 될 소치 올림픽. 언제 어디에 있던 김연아를 응원해 주었던 국민들을 위해 결과가 어떠하든 단순한 마침표가 아닌 느낌표로 간직될 수 있길 바라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김연아는 마지막 행보만을 남겨두고 있다.

 

김연아 감동 영상 

 

<사진출처 내부표시>

데이터 출처

  • ISU
    프로토콜

태그

피겨스케이팅,데이터 스토리텔링,김연아,금메달,우승,피겨요정,소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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